『감은 눈이 내 얼굴을』 이상하고 아름다운 안태운의 시집을 읽는 세 가지 키워드

 


원으로 휘도는 물의 파형이 역으로 너희의 몸을 맴돌고 있다. 탕을 점유하고 있었다. 물은 멈추지 않고 있었고 탕은 그런 물을 보존하고 있었다.

-「탕으로」에서

이것은 어느새 다가왔는지도 모르게 밀려들어 해변을 채우는 파도, 거대한 욕탕을 채운 뜨거운 물이 빠져나가는 순간, 빗물이 빠지는 속도보다 신속하게 내려서 어느새 발목을 채우는 폭우의 장면이다. 35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며 출간된 안태운 시인의 첫 시집은 이렇듯 액체의 성질을 띠고 있지만 그 견고함이 대단해서, 마치 물로 만든 집 같다. 이 시집이 자아내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성처럼 견고하지 않았더라면, 조금만 더 말캉했더라면 나는 이 시집을 물줄기로 짠 스웨터라고 했을 것이다. 실을 하나하나 엮어 짜듯 그렇게 촘촘하다. 이토록 견고한 시의 집을 지은 안태운 시인은 동화 『아기 돼지 삼형제』 속 막내 돼지 같다. 꼼꼼하고 섬세한 막내. 동화 속 막내 돼지는 형들이 지푸라기나 나뭇가지로 단번에 집을 지을 때, 혼자서 한 장 한 장 벽돌을 고르고 쌓아 올리며 그 벽돌과 벽돌의 사이를 단단하게 바른다.


사이

이 시인은 ‘사이’에 대해서도 익숙하다. 늘 사이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인의 말이다.

뒷모습과/ 뒤를 돌아보는 모습/ 사이에서/ 걷고 있었다

시인은 순간의 순간, 찰나의 찰나를 붙잡는다. 그리고 그 틈을 벌린다. 시간과 시간 사이, 걸음과 걸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마주치는 시선과 시선의 사이, 물과 물의 사이. 사이는 틈이기도 하고, 틈은 자리이기도 하다. 시인은 자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 곳에 자리를 만들고, 그곳에서 천천히 걷는다. 천천히 걷는다는 것은 천천히 본다는 것. 시인이 적어 내려가는 시의 이미지는 천천히 흐른다. 간혹 퍼붓는 폭우 같은 이미지가 나타나더라도 그 힘찬 기세마저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다. 역동적인 동시에 느린 이미지. 이 역설적인 독특함이 시집을 ‘물로 짜여진 집’처럼 느껴지게 한다.


만남 

사이는 만남이 있어야 생긴다. 이 시인은 만남에 대해 아름다운 문장을 쓴다. 만나는 일을 두고 호들갑떨거나 과장하지 않는데 시인이 묘사하는 만남은 아름답다. 꽃을 건네고 무릎을 꿇는 로맨틱한 장면이 아닌 만남의 일상을 기록하는데 그 행동들은 어쩐지 로맨틱한 구석이 있다. 계절이 바뀌어 가는 동안에 오래 걷고, 네가 좋다고 말하고, 서로의 일기를 쓴다. 고개를 끄덕이고, 응시하며 다음 계절을 기다린다.

너와 만나고 있다, 계절의 순환 속에서. 나는 너와 오래 걸었고 네가 좋다. 네가 좋았다. 너도 그럴 것 같고 나는 너의 일기를 쓰려 한다. 너는 허락한다. 나는 너의 일기를 쓰고 너도 너의 것을 쓰자. 우리는 서로 쓴 일기를 보여 주진 않으리라 맹세한다. 볼 수 있어선 안 된다고. 안 됩니까. 너는 끄덕인다. 너를 응시한다. 공백을 채우면서 다음 계절을 보태고 있었다.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나는 일기를 쓰고 있다」에서

전문은 읽어 보면 이것은 연애시가 아닌데, 이런 만남이 있었다고 이야기해 주는 시의 일부분은 더할 나위 없는 연애시다. 안태운 시인의 시는 항상 그런 것과 아닌 것이 뒤섞여 있다. 연애시라면 연애시인 대로, 연애시가 아니라면 연애시가 아닌 대로 아름답다. 시집 제목처럼, 눈을 감으면 보이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이 아닌가.

어느 계절, 어느 시간에 읽어도 좋을 이 시집으로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다. 시집을 펼치면 흐르는 글자들에 흠뻑 젖게 되지만 축축하지 않고 산뜻한 안태운이 지은 물의 집으로. 글자와 글자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 연애시와 연애시 아닌 것의 사이 어디쯤에서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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